VESSEL · Issue 18 · Cover Story Reading time · 22 minutes Section · Interview
Issue 18 · Cover Story

The Vessel
of Time.

한 그릇이 식탁에 놓이기까지, 100년이 걸렸다.
4대째 흙을 빚는 도예가 한지윤의 작업장과,
그 자리에서 만난 시간에 대하여.
Words bySeoyeon Kim
PhotographyHyeonwoo Lim
Edited byVESSEL Editors
PublishedMay 26, 2026
Cover Photograph · 한지윤의 작업장, 강원도 정선 Hyeonwoo Lim · SONY α7IV · 35mm f/1.4

강원도 정선의 산골짜기를 차로 40분을 들어가야 한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지고, 그 끝에 90년 된 흙벽 작업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지윤(38). 그는 이 자리에서 4대째 흙을 빚는다.

한지윤의 증조할아버지가 이 작업장을 처음 세운 것은 1934년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가운데, 한 청년이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들어왔고, 화덕 하나를 만들었다. 그 화덕은 4대를 거치며 여러 번 다시 쌓아졌지만, 그가 처음 빚은 자리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봄의 햇살이 길어지던 4월의 어느 오후, 우리는 그의 작업장에서 4시간을 이야기했다. 화덕 옆에 앉아, 그가 빚어낸 잔으로 차를 마시며. 이 글은 그 시간의 기록이다.

— Chapter 01

흙의 시간

먼저, 이 자리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4대째 이곳에 계시다고요.

네. 1934년에 증조할아버지가 처음 자리 잡으셨어요. 일제강점기 한가운데, 도시에서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시던 분이 어느 날 그만두고 이곳으로 들어오신 거예요. 왜 그러셨는지 가족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요. 다만 "화덕만은 직접 만들고 싶었다"는 말씀이 전해 내려와요.

그 화덕이 지금도 작업장 한쪽에 그대로 있어요. 90년이 넘었죠. 저는 옆에 새로운 화덕을 하나 더 만들어서 그걸 쓰는데, 여전히 증조할아버지의 화덕도 1년에 두세 번은 불을 피웁니다.

왜 그 화덕을 계속 쓰시나요?

실용적인 이유는 아니에요. 그 화덕에서 구운 그릇은 색이 조금 다르거든요. 90년 동안 흙과 불의 흔적이 화덕 자체에 스며들어 있어서요. 같은 흙을 빚어도 다른 그릇이 나옵니다.

저는 이게 그저 신기한 우연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차이라고 생각해요. 90년의 시간이 화덕 안에 들어 있는 거죠. 그리고 그 시간은 누구도 다시 만들 수 없어요.

A note on time
"좋은 그릇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려서
도착하는 것입니다."
Han Jiyoon · Ceramicist · Jeongseon, 2026
— Chapter 02

기다림의

한 그릇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한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3개월에서 6개월이에요. 흙을 채취해서 숙성시키는 데만 한 달이 필요하고, 빚는 데 일주일, 말리는 데 또 두 달. 그리고 굽는 건 사흘에서 닷새. 그 후에 마무리, 검수까지.

물론 더 빠르게 만들 수도 있어요. 기계 흙을 쓰고, 건조기를 쓰면 한 달도 안 걸립니다. 그렇게 만든 그릇이 시장에는 더 많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만들지 않아요.

왜죠?

흙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흙이 충분히 숙성되지 않으면, 구울 때 갈라져요. 충분히 마르지 않으면, 가마 안에서 깨지고요. 시간을 줄이려고 하면, 결국 흙이 망가집니다.

그리고 사실, 시간을 들이는 것 자체가 중요한 부분이에요. 좋은 그릇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도착하는 거니까요.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90년 된 화덕. 1934년 한지윤의 증조할아버지가 직접 쌓았다. Photograph · Hyeonwoo Lim
— Chapter 03

왜 이 일을 하는가

힘들지 않으세요? 4대째 이어진 일이라는 무게가 있을 텐데요.

물론 힘들 때가 있었어요. 20대 초반에는 이 일에서 도망치고 싶었거든요. 도시로 나가서 다른 일을 하고 싶었고, 실제로 5년 정도 도시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결국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답을 못 했어요. 그 답을 못 찾았던 동안에도 손은 계속 흙을 빚고 있었지만요. 그러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이 일에 답을 찾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이제는 답을 찾지 않아요. 그저 매일 흙을 빚을 뿐이에요. 그 자체가 답인 것 같아서요.

다음 세대에 이 일을 물려주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이가 둘 있는데, 한 명은 흙을 만지는 걸 좋아하고, 다른 한 명은 별로 관심이 없어요. 좋아하는 아이라도 강요하진 않을 거예요. 이 일은 강요로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만약 누구도 이어받지 않는다면, 이 작업장은 저로 끝납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4대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시간이니까요.

그 다음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작업장이 될 수도 있겠죠. 그것도 좋은 일이에요.

Profile

Han Jiyoon

Ceramicist · b. 1986 · Jeongseon
강원도 정선의 4대째 도예 작업장을 잇는 도예가. 2015년 일본 가마쿠라에서 1년 거주하며 시노 도예 기법을 익혔다. 2020년 개인전 '시간의 그릇' 이후 매년 두 차례 작품 발표. 2025년 한국현대공예전 우수상 수상.

인터뷰가 끝날 무렵, 해가 기울었다. 화덕 옆에 앉아 있던 우리에게 그는 차 한 잔을 더 따라 주었다. "이 잔은 5년 전에 만든 거예요"라고 그가 말했다. 5년이 지난 잔에 담긴 따뜻한 차. 그 잔은 5년 전부터 이 자리에 도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한참 말이 없었다. 좋은 그릇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도착하는 거라는 그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그것이 그릇에 대한 말일까, 아니면 사람에 대한 말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도착하는 시간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Seoyeon Kim
VESSEL Issue 18 · Cover Story · Spring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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