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안 써질 때, 가장 먼저 청소하는 곳은 책상이다. 그리고 그 청소는 글 쓰는 일과 닮아 있다."

주말 아침,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던 책상을 정리했다. 6개월 동안 글이 잘 안 써졌고, 책상은 그 6개월의 흔적이었다. 마시다 만 머그컵, 두 번째 챕터에서 멈춰 있는 책, 인쇄해 둔 채로 줄도 긋지 않은 원고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쌓인, 정체불명의 영수증과 메모지들.

책상을 닦으면서 한 가지를 알았다. 글이 안 써졌던 게 아니라, 내가 책상 앞에 앉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자리에 앉기 싫어서 책상 위에 자꾸 다른 것들을 올려놓았던 것이다. 자리를 빼앗으면, 자리에 앉을 핑계가 사라지니까. 자리에 앉지 않으면, 안 쓰는 게 책상 탓이 되니까.

책상의 시간

좋은 책상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좋은 책상은 누군가가 그 자리에 매일 앉아 있는 책상이다. 매일 앉지 않으면, 아무리 비싼 원목이라도 책상이 아니라 그저 가구가 된다.

책상은 자리에 앉는 사람을 통해 책상이 된다. 글 쓰는 사람이 매일 앉으면 글 쓰는 책상이 되고, 그림 그리는 사람이 매일 앉으면 그림 그리는 책상이 된다. 자리에 앉는 사람의 시간이 그 책상의 정체성이다.

자리에 앉지 않으면,
좋은 책상도 그저 가구가 된다.

그래서 정리를 끝내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은 글이 잘 안 써질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앉아 보기로 했다. 한 시간을 그렇게 보냈고, 결국 노트북을 닫았다. 그래도 다음 날엔 다시 앉을 것이다. 다음다음 날엔 한 줄이라도 써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이 책상은 다시 책상이 될 것이다.

— 청소를 마친 책상. 다시 책상이 되기 위한 시작.

일하는 사람의 자리

한 친구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책상을 사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작가가 되려는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책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식탁이 아니라, 침대가 아니라, 그저 글을 쓰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책상이.

거창한 책상일 필요는 없다. 작아도 된다. 다만 그 책상이 "내가 글을 쓰는 자리"여야 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글을 쓰기 위한 자리. 그 자리에 매일 앉는 것, 그것이 작가의 첫 번째 일이다.

이건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무언가 손으로 만드는 사람 모두에게 자기만의 자리가 필요하다. 그 자리에 매일 앉는 일이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첫 번째 일이니까.

다시, 자리에 앉기

이번 주의 약속은 이거다. 매일 한 시간씩 책상 앞에 앉기. 글을 쓰든 안 쓰든,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그저 앉기. 6개월 만의 일이다. 어쩌면 6개월 후에는 다시 비슷한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그게 글 쓰는 사람의 일이라고, 나는 이제 안다.

— Seorin
윤서린 · The Long Way Home · Issue 142